방 안은 초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더웠고, 그 때문에 막 문을 연 데자뷰는 용건을 밝히기에 앞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 좀 그만 피우면 안 될까? 방밖은 봄인데 방안이 한여름인 건 좀 너무하잖아?”
“난 관계없어.”
‘넌 관계없지만 내가 관계가 있단 말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다행히 상대가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었기에 입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오른손 위에서 맹렬하게 불타오르던 불덩이를 손으로 움켜쥐어 터뜨린 남자, 휘염은 지루한 표정으로 데자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놈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다. 마을 외곽에 기사로 보이는 놈들이 몇 나타났어.”
“‘목표’는?”
“전혀. 생각보다 엉덩이가 무거운데, 이 정도 깔짝거리는 거 가지고는 움직이지 않을 모양이야. 아무래도 조금 더 화려하게…….”
“아니. 이런 소꿉장난은 이제 질렸다. 그냥 놈을 만나 바로 때려눕혀야겠어.”
“뭐? 잠깐, 지금 기사와 마법사가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놈을 상대하겠다는 말이야? 이봐 아무리 그래도…….”
휘염은 고개를 살짝 틀며 데자뷰를 쏘아봤다.
“지금 내 행동을 막겠다는 건가?”
“……빌어먹을. 좋을 대로 하라고.”
데자뷰가 넌더리를 내며 한 발 물러서자 휘염은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을 나서려는 찰나, 데자뷰가 다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또 뭐야?”
“저건 어쩌고. 우리 얼굴을 봤잖아.”
데자뷰는 턱으로 뒤를 가리켰다. 휘염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의자 뒤에 손발이 묶인 채로 널브러져 있는 작은 소녀를 응시했다. 여관 종업원인 그녀는 휘염 일행에게 저녁식사를 가져다주었다가 붙들려 몇 시간째 감금되어 있었다. 휘염은 새파랗게 질려 살려달란 말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있는 소녀를 잠시 보다 고개를 돌렸다.
“필요 없어. 저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시간은 없다.”
“너 정말…… 휴, 알겠다. 하긴 뭐 이 상황에서 살아나긴 글렀지만.”
둘이 방을 나서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은 소녀는 밖에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친 구조요청에 어떠한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점점 방안이 더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에야 저 이상한 마법사-그녀는 휘염을 미치광이 마법사라고 생각했다-가 커다란 불덩어리를 손 위에 띄워놓고 있어 그랬다 쳐도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더 더운 느낌이었다. 불길한 마음에 창가로 기어간 그녀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입을 벌렸다.
“세상에…….”
창밖엔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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