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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

당신도 할 수 있다 판소스타 K 시즌 2 입선 : 별주부전 - 별주부와 용왕의 사정(제시어 : 집단광기, 이리잡기, 따뜻한 봄, 청탑, 리이)

별주부와 용왕의 사정

황금잉여

 



 “이를 어이할꼬.”

 

 유표선인 칠성장어(油表仙人 七星長魚)는 이마를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번들거리는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넓디넓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용궁의 바다는 따뜻한 봄을 맞아 눈부신 연초록빛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는 한 달 째 대전(大殿)을 맴돌며 한 숨만 쉬고 있었다. 칠성장어를 걱정한 백모장군 대게(百矛將軍 大憩)는 몇 번이나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칠성장어는 대게 장군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혼자 머리를 싸매고 거듭 고민을 계속했다. 오늘은 결국 백모장군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공께서는 소장의 말이 들리지 않으시오? 한 달이 넘도록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고 계신 이유가 대체 뭐요?”

 “어찌 해야 할 줄 모르겠으니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시오. 이제야말로 우리 용왕마마의 병도 치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렇게 기쁜 시기에 아무리 고민이 있다 한들 그렇게 한숨만 쉬고 계셔서야 되겠소?”


 장군의 얼굴을 한참 보던 칠성장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참을성이 없는 대게장군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칠성장어가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그 점이 고민이라는 겁니다. 장군.”

 “무슨 소리요?”

 “장군께서는 정녕 토 처사의 말을 믿으십니까?”

 “그거야 토 처사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정말로 장군께서는 천지간에 간을 빼내어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짐승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유표선인의 말에 백모장군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간을 꺼내서 따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대게 장군의 입장에서도 믿기 힘든 일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토 처사는 자신이 간을 빼 낸다는 구멍까지 보여주며 간을 따로 보관한다고 말했었다. 대게 장군은 천리 길을 마다 않고 토끼의 간을 구하러 여정을 떠났었던, 그리고 지금은 그 토끼의 간을 받으러 다시 길을 떠난 토선(土仙)자라공을 떠올렸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용궁의 8대 대신으로 자리를 지켜왔던 자라공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자 대게 장군은 다시 엄한 얼굴이 되었다.

 

 “공께선 자라 공을 믿지 못하시는가 보구료.”

 “자라 공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오. 간을 몸 밖으로 빼낼 수 있는 짐승이 세상에 어디 있겠소이까.”

 “그거야...”

 

 당황한 표정의 백모장군은 자신의 집게발을 들어 눈앞에 보이는 조개를 집어 올리며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작은 조개껍질은 집게발에 잡히지 않고 바닷물 속으로 흘러 사라졌다. 대게 장군은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이거야 원. 난 이만 집게발을 손질하러 가봐야 겠소. 고작 조개 조개껍데기도 이리 잡기 힘들어서야...”

 “솔직히는 장군께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어허, 토 처사가 직접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소! 그럼 지금 공께서는 토 처사가 우리 용왕마마를 속이기라도 했다는 거요!”

 “용왕마마를 속인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속인 거겠지요.”

 “우리 모두를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대전 복도의 반대편에서 대게 장군이 아닌 또 다른 목소리가 칠성장어의 말을 받았다. 대게 장군과 칠성장어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서자, 거기엔 흑혈팔수(黑血八手)문어 장군이 여덟 개의 다리를 놀리며 대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대게 장군 코앞까지 걸어 온 문어 장군은 여덟 개의 다리 빨판을 비비적거렸다. 빨판이 비벼질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말이 안 되는 일이오. 어떻게 간을 몸 밖으로 빼는 짐승이 있단 말이오? 대게 장군은 정녕 그 말을 믿으시오?”

 “장군은 또 무슨 소리요! 그럼 토 처사가 마마께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요?”

 “당연한 것 아니겠소. 간사한 토끼의 혀가 용왕 마마를 현혹한 것이라고 내가 전부터 이야기하지 않았소? 아직까지 토끼 놈이 정말 간을 몸 밖으로 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장군께서도 참으로 무던하시오.”

 “말을 삼가시오 문어 장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두 장군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점점 험악해지자, 칠성장어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그러나 문어 장군은 여전히 빨판들을 비비며 나팔처럼 생긴 입을 뻐끔거렸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소? 대신들이 이 모양이니 많은 용궁 백성들까지 집단 광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간악한 토끼의 말을 사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 아니오. 한심한 노릇이오. 간을 찾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여직 그 말을 믿고 계신 대게 장군도 장군이거니와, 길을 떠난 자라 공도 참으로 아둔하지.”

 “말을 삼가라고 했소!”

 “삼가지 않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시는가.”

 “두 분 장군!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대게 장군은 금방이라도 문어 장군의 여덟 다리를 잘라낼듯한 기세로 가시 돋힌 집게 모양의 창을 치켜 올렸고, 문어 장군은 할 테면 해보라는 듯 여덟 다리를 현란하게 놀렸다. 두 장군 사이에서 당황하는 칠성장어의 만류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문어 장군의 입에서 검은 잉크 같은 액체가 서서히 흘러나왔다. 금방이라도 피를 볼 기세였다. 그 순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용왕이었다.

 

 “공들은 뭣들 하는가!”

 “용왕 마마!”

 “용왕 마마!”

 “납시었습니까 용왕 마마.”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 수그러들었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 온 용왕의 얼굴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에 쓴 통천관(通天冠), 강사포(絳紗袍)를 입은 모습은 여전히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고, 백옥홀(白玉笏)을 쥔 손등의 비늘은 여전히 푸른빛으로 번쩍였으며, 꼬리를 곧게 뻗어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모습은 여전히 좌중을 장악하는 힘이 있었다. 장내를 둘러보던 용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도다.”

 “황송하옵니다 용왕 마마.”

 “다시 물어야 하나?

 “토 처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사옵니다. 마마.”

 

 문어 장군이 둥근 머리를 빨판으로 문지르며 머리를 조아렸다. 대게 장군과 칠성장어가 그를 쏘아보았지만, 문어 장군의 표정은 태연했다. 대게 장군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렸다. 칠성장어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 용왕의 관심을 돌리려했지만, 이미 용왕의 시선은 문어 장군을 향하고 있었다.

 

 “경이 이야기해 보라. 토 처사의 이야기가 무엇인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토 처사는 용왕 마마를 기만하였나이다.”

 “이보시오 문어장군!”

 

 듣다 못한 칠성장어가 문어 장군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용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수염을 들어 칠성장어를 막았다. 그리고 다시 문어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장어 경은 잠시 가만히 있게. 과인은 문어장군의 말을 듣고 싶으이. 장군은 계속 이야기해보게. 토 처사가 나를 기만하였다는 것은 간을 뽑아 놓고 사는 짐승이 없다는 의도로 한 말 같구먼. 과인의 말이 맞는가.”

 “마마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마마.”

 “과연. 경의 말은 이치에 전혀 어긋남이 없군. 당연히 그렇지.”

 “마마! 그러나...”

 “마마!”

 

 용왕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일순간 안 그래도 병색이 짙던 보랏빛 얼굴이 흰 수염과 더불어 한층 노쇠하고 수척해보였다. 용왕의 침묵에 세 대신은 숨을 죽였다. 이번만은 문어 장군 역시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용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뜻밖에도 용왕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천일주(千日酒)를 가져오라.”

 “마마!”

 “오늘은 과인이 그대들과 한 잔 하고 싶군.”

 “마마......”

 

 주홍빛과 분홍빛을 내던 산호초들이 서서히 눈을 감으며 밤이 왔음을 알렸다. 용왕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용궁의 청탑(靑搭)도 번쩍거리던 빛을 잃고 평범한 석회빛이 되었다. 다만 아귀들만이 밤의 용궁을 거니는 다른 어신(魚臣)들을 위해 이마에 달린 호롱을 밝혔다. 어두워진 용궁의 연회석에 용왕과 세 대신이 둘러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용왕과의 허물없는 술자리에 한껏 들떠 떠들었을법한 대게 장군도, 그에 지지 않고 자리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을 문어 장군도 아무 말이 없었다. 칠성장어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 술자리가, 용왕 스스로 토끼의 꾀에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 대신은 각자 복잡한 심정을 끌어안은 채 용왕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천일주를 한 모금 마신 용왕은 길게 읍하고 입을 열었다.


 “역시, 천일주의 맛은 용궁 제일이야.”

 “......”

 

 세 대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용왕이 미소를 지었다.

 

 “과인은 토 처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네.”

 “마마!”

 “마마! 그러하오시면, 어찌하여 토 처사의 배를 가르지 않으셨나이까.”

 “저도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사옵나이다, 마마.”

 “대신들의 뜻이 그러한가. 왜 배를 가르지 않았는지는 사실 과인도 잘 모르겠다네.”

 

 용왕의 말에 세 대신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용왕은 이미 알고 있었다. 토끼는 간을 빼놓고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왜 그의 배를 갈라 간을 취하지 않은 것일까. 다시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용왕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떠나기 전날 눈치를 챘지. 연회가 벌어지던 날은 과인도 전혀 몰랐네. 그땐 토 처사의 말에 속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자네들도 그 자리에 다 같이 있었으니 과인의 말을 이해할 테지. 일순 기지를 발휘하여 그렇게 혀를 놀리니, 어찌 속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날만은 과인 역시 세상의 이치란 깊고도 오묘하여, 간을 밖으로 빼어 놓고 살아가는 짐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네. 정작 토 처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챈 것은 그 다음날이었어.”

 “마마! 황공하옵니다.”

 “외람되오나, 토 처사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이까.”

 

 용왕은 수염을 천천히 흔들며 대신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 대신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험악함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용왕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토 처사의 눈 때문이야.”

 “마마.”

 “황송하오나 저희들이 우둔하여 마마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나이다.”

 “환대를 받으며 용궁을 떠나기 직전의 토 처사의 눈을 보았단 말일세. 자라 경의 등에 타고 용궁을 떠나기 직전의 눈을 말이야. 그 동안 귀신같이 표정을 바꾸고 혀를 놀려왔을지 모르지만, 떠나기 직전 토 처사의 얼굴은 과인에게 명약을 가져다주고 싶어 하는 자의 그것이 아니었네. 그 눈빛은 계획에 성공한 자의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지. 그때 알았다네. 토 처사의 간은 처음부터 뱃속에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토 처사를 결박하셨어야...”

 “마마! 어찌 그때 말씀을 하지 않으셨나이까.”

 “마마! 어째서 그때 윤허를......”

 

 시종일관 말을 아끼던 칠성장어도 이번만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용왕은 토끼가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음에도 용왕은 토끼를 다시 잡지 않았다. 세 대신의 시선이 용왕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 몇 분이 지났을까. 천일주 잔을 응시하던 용왕의 눈빛이 처연해졌다. 그는 다시 미소 지었다.

 

 “그때 자라 경의 눈 역시 같이 보았기 때문일세.”

 

 용궁의 밤은 이제 완전히 깊어가고 있었다. 호롱을 밝히던 아귀들도 깜빡 깜빡 조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하나 둘 꺼지는 호롱불은 움직이지 않는 용왕의 얼굴을 일렁이게 했다. 말없이 술잔을 응시하던 용왕이 다시 천일주를 한 모금 마신 뒤,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술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대신들은 말이 없었다.

 

 “토 처사가 과인을 속였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자라 경의 눈을 같이 보았단 말이지. 그자라 경의 눈빛을 경들은 보았는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네. 왜 그랬을까.”

 

 용왕의 말에 대신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다시 술잔을 보던 용왕이 말했다.

 

 “자라 경은 어떻게 해서라도 과인을 살릴 약을 찾아오고 싶었던 거라네. 하지만 그는 똑똑하지 못하지. 쉽게 속기도 하고, 그렇게 속은 자신을 자책하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쉽게 속는다네. 그렇지 않나? 칠성장어 경. 자네가 말해보게. 자네 생각엔 자라 경이 영민하다고 생각하나?”

 “........황송하옵니다. 마마.”

 “그럼 자라 공의 동문인 백모장군 자네가 말해보게. 자라 경에게 자네와 같은 용맹함이 있는가?”

 “.......황송하옵니다. 마마.”

 “문어 장군이 말해보게. 자라 경에겐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인이 아둔하여 마마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나이다.”

 “자라 경에겐 아무것도 없다네. 영민한 머리도, 용맹한 기상도. 그렇다고 뛰어난 창술이 있는 것도, 용궁 대신들을 즐겁게 할 재주도 없다네. 있다면 오로지 과인을 생각하는 마음뿐이지.”

 “마마!”

 “마마!”

 “그때 자라 경은 확신하고 있었다네. 토 처사가 간을 빼놓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경들은 기억하나? 처음 내 약을 가지러 육지에 가서 토 처사를 잡아 와야 한다고 했을 때, 누구도 가지 못한다 했던 고단한 길을 그는 스스로 가겠다고 자처했네. 자네들은 그가 공을 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수군거렸었지. 그리고 그 아둔한 자라 경이 설마 토 처사를 정말 잡아올 수 있을 거라고도 믿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나 그가 데려왔던 거야. 그리고 그 자라공이 다시 약을 가지러 다녀오겠다고 나에게 말했네. 울 듯한 얼굴로 반드시 약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말이지. 나는 그 눈빛을 배신할 수 없었네. 설사, 토 처사를 그대로 보낸 것 때문에 결국 약을 찾지 못해 내가 죽는다 해도 말이지.”

 “마마!”

 “망극하옵니다!”

 “마마!”

 

 용왕이 입을 다물자, 세 대신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대게는 집게 창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고, 문어는 연신 뻐끔거리며 찔끔 찔끔 나오는 검은 눈물을 앞다리로 닦고 있었다. 칠성장어 역시 침통한 표정이었다. 대신들의 얼굴을 둘러보던 용왕은 미소를 지었다.

 

 “경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안다네. 하지만 알아주길 바라네. 지금 여정을 떠나서 이 자리에 없는 자라 경 역시, 경들만큼 과인을 생각한다는 것을 말일세. 과인은 복이 많은 군주였네. 그대들과 같은 신하를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 이제 그만하고 술을 들게. 과인은 마지막까지 경들과 함께일 수 있어 행복했다네. 부디 다음 왕이 정해지더라도 대신들은 힘을 합쳐 용궁을 널리 이롭게 하게.”

 “마마!”

 “마마! 이렇게 포기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마마!”

 

 세 대신들의 흐느낌에 애써 밝게 웃으며 술잔을 권하던 용왕의 눈가에도 기어이 눈물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울음바다가 될 것 같은 술자리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일순 꾸벅 꾸벅 졸고 있던 아귀들의 호롱불에 다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켜지는 호롱불의 빛에 세 대신과 용왕이 잠시 시선을 뺏긴 찰나, 연회장의 문을 거칠게 열어 재끼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온 몸이 진흙투성이에다 짠 바닷물과 땀으로 얼룩진 피부는 가뭄으로 갈라진 땅을 연상시켰다. 부르튼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라였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지만, 표정만은 누구보다도 밝았다. 용왕과 세 대신의 눈이 커지는 순간, 자라가 한 팔을 높게 들어 흔들었다. 그의 손에는 신묘하게 생긴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마마! 기뻐하십시오! 마마의 병을 고칠 약을 찾았습니다!”


지난번에 비해 참가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 여흥을 위해 글을 하나 보탭니다. '토끼를 이리잡기 힘들어서야...'라고 문장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토끼 잡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아 그 문장을 쓸 곳이 없더군요...OTZ 다른 것 보다 제시된 제시어들을 전부 집어넣으면 한 번 웃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만, 쓰고 나니 안웃기네요...


쌀쌀한 날씨에 훈훈한 이벤트를 열어주신 세 분께 박수를 드립니다.

 

 

4.『황금잉여』님의「별주부전 - 별주부와 용왕의 사정」

 

※ 총점 : 33.5점(입선)

 

(1) 주제 : 11점

◎ 심사위원 A : ★★★☆

- 비록 엔딩에서 자라공은 “마마! 기뻐하십시오! 마마의 병을 고칠 약을 찾았습니다!”라 소리치긴 했지만 이 글의 진정한 주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뭐 하나 뛰어난 점 하나 없이 오직 자신이 모시는 용왕에 대한 충성심과 따듯한 마음만을 갖고 있는 자라공 자체로 보입니다.

◎ 심사위원 B : ★★★

- 흔히들 동화로 접하며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 용왕의 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것은 좋았습니다만 제시어를 너무 피상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비록 그 자율적인 해석이 보장되어 있지만 제시어가 대회 참가조건으로 지정된 것은, 그래도 작품 내에서 어떤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인데 단순히 단어로밖에 사용하지 않은 점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 심사위원 C : ★★★★☆

- 타인에 대한 신뢰와 그에 따른 책임과 보상은 많은 이야기에서 볼 수 있지만 별주부전의 주인공인 자라와 토끼가 아닌 용왕과 그 신하의 입장에서 썼다는 것이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2) 문체 : 12.5점

◎ 심사위원 A : ★★★

- 키워드를 문장들 사이사이에 독특한 방식으로 삽입한 것에 즐거웠습니다. 현대소설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어투와 어휘 등이 가볍고도 신선하게 다가와 읽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 심사위원 B : ★★★★☆

- 고풍스런 분위기의 어투를 통하여 한 편의 사극과도 같은 분위기를 잘 연출했습니다. 특히 대게 장군이나 문어 장군과 같은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사람에게 해산물의 껍데기만 씌운 것처럼 묘사한 게 아니라 팔과 다리 등에서 그 생물 특유의 움직임을 서술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조금만 더 생동감 있는 묘사를 했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 심사위원 C : ★★★★★

- 인물에 대한 묘사를 중점적으로 각 인물의 행동이 심정을 대변해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3) 구성 : 10점

◎ 심사위원 A : ★★★

- 가벼운 반전에 따듯함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줄에 유독 기뻐 스스로 그 기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별주부전 원작은 꽤 냉소적인 정서가 가득한 작품이지요. 반면 이 글은 한 장면을, 그리고 이야기 얼개 전체를 용왕측의 시점에서, 특히 자라경과 용왕의 따스한 면모를 부각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 점이 좋았습니다.

◎ 심사위원 B : ★★★

- 내용이 너무 간략하다거나 아니면 이야기의 흐름이 무너진다거나 하는 치명적인 단점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배경이 너무 좁은데다 별다른 굴곡이 없습니다. 거의 변경되지 않는 공간 아래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서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글이 그런 좁은 공간 아래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 아닌 만큼 이런 특징은 부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 심사위원 C : ★★★★

- 깔끔했습니다. 소설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낸 시험문제 지문을 보는 듯 했습니다.

 

(4) 총평

◎ 심사위원 A

-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재치에 감사했습니다. 열린 결말 또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작품을 올린 뒤 다시 확인하여 드러난 태그를 제거했더라면 더 읽기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 심사위원 B

- 어린 시절 흔히 접하는 이야기들을 살짝 비틀어서 재탄생 시키는 일은 종종 시도되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나름의 신선함을 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라는 게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반증도 되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 매력을 완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짧은 단편이라는 한계 속에서 작가 스스로가 신중하게 작품을 진행해 나간 결과이지만 그래도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 심사위원 C

- 예전에 별주부전을 읽었을 때는 토끼의 입장보단 자라의 입장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느낀 별주부전의 교훈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멍청한 상사가 있으면 일을 말아먹는다.’라는 쪽이 가까웠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용왕의 태도는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또한 각 등장인물의 행동거지를 집중적으로 표현해 용왕의 신뢰와 책임감이 잘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