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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

당신도 할 수 있다 판소스타 K 시즌 2 입선 : 인형은 미소를 지었다.(제시어 : 집단광기)

인형의 미소

 

글쓴이 아들

 

 

 비 오는 날 오후, 소녀는 인형을 발견했다. 작고 허름하지만 예쁘장하게 생기고, 어딘가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인형을, 소녀는 집까지 들고 갔다. 인형은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인형을 깨끗이 씻겼다. 인형의 옷도 좋은 향기가 나도록, 섬유유연제를 듬뿍 뿌려 빨았다. 소녀는 지극정성이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를 보고 인형을 갖다 버리라 했지만, 소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소녀의 눈은 오로지 인형만을 향해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를 꾸중하고 거실로 나와 TV를 틀었다. 그녀가 보고자 하는 연속극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인형을 광고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로군. 소녀의 어머니는 속으로 납득했다. 그리고, 더 이상 소녀를 꾸중하지 않기로 했다.

 소녀는 인형의 몸을 씻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비가 오는 중이라서 햇볕에 말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소녀는 화장실로 가서 헤어 드라이기를 가지고 와 인형의 몸과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을 말렸다. 인형의 머리카락은 옅은 베이지색이다. 인형의 눈동자는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인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지고 와 인형의 몸을 덮었다.

 "춥지 않게 해 줄게."

 소녀는 인형을 보며 방긋 웃었다. 인형도 소녀를 향해 눈웃음을 짓는 듯 했다.

 다음 날, 소녀는 인형을 가지고 학교로 갔다. TV광고에 나오는 인형을 가지고 가자, 같은 반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인형을 바라보았다.

 "저기, 그거 만져봐도 돼?"

 몇몇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껴안아 보기도 하고, 인형의 옷을 만져보기도 하면서 얼마나 정교한 기술로 인형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했다. 여자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소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인형을 더욱 자랑했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틀었다. 소녀의 인형이 TV에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인형 옷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인형을 정식으로 구매하면, 인형에게 입힐 수 있는 예쁜 옷 여러 벌을 덤으로 준다는 것이다. 소녀는 당장 방으로 올라가서 그 동안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사고 싶은 거 안 사면서 꼬박꼬박 동전을 모아놓은 돼지 저금통을 살펴봤다. 도자기 형태라서 쉽게 깨질 것 같다. 그러나, 깨면 소녀의 어머니가 크게 화를 낼 것이다. 더군다나, 인형 옷 사려고 깼다는 걸 알면 얼마나 황당해 하실까. 소녀는 방바닥에 돼지 저금통을 놓고 그 위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을 피해 신발장 속에 들어있는 공구함을 꺼내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소녀는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불쌍한 눈을 하고 있는 돼지 저금통을 망치로 내리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저금통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이불을 덮어놔서 소리가 어머니한테까지 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소녀는 이불을 걷었다. 돼지 저금통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핑크빛 조각들이 원망으로 반짝이며 소녀를 향해 뾰족한 부분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영리했다. 소녀는 일단 안에 있는 동전들을 모두 줍고 공구함을 다시 신발장에 넣어놓았다. 그리고, 신발장 옆에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마치 저번에도 돼지 저금통을 깬 경험이 있는 것처럼 능숙하게 빗자루로 핑크빛 조각들을 쓸어모았다. 그리고, 쓰레받기로 조각들을 담아 방 한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조각들을 쏟아부었다.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키지 않도록 쓰레기통만 조용히 처리하면 될 것이다.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 있던 인형도 씩 웃고 있는 듯 했다.

 소녀는 동전을 세어 보았다. 아쉽게도 인형을 살 만큼의 돈이 안 된다. 소녀는 한숨을 지었다. 이 돈을 쓰지도 못하고 어딘가에 놓아 두자니, 금방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책상 위에 그대로 놓아두면 어머니에게 저금통을 깬 것이 들통날까 두렵다. 소녀는 수십 분을 고민했다.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소녀는 마침내 묘안을 생각해냈다. 통장을 만들어 거기에 돈을 넣어두면 된다. 언젠가, 어머니와 같이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둔 게 있다. 은행이 조금 먼 곳에 있어서인지 소녀는 자주 이용하지 않고 결국 돼지 저금통을 다시 쓰게 됬지만, 돼지 저금통이 없는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다. 소녀는 책상 서랍에 고이 잠들어있던 통장을 가지고 방을 나섰다.

 "엄마! 나, 나갔다 올게!"

 "그래. 늦지 않게 들어오렴."

 소녀의 어머니는 그냥 놀다 오겠거니 하며, 소녀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연속극을 시청하고 있었다. 소녀는 어머니 눈치를 보며 조용히 집을 나갔다.

 은행은 멀긴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알고 있다. 소녀는 동전더미와 통장을 옷 주머니 안에 넣고, 양 손으로 주머니를 감싸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행여나 동전이 한 개라도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소녀는 이따금씩 주머니 안을 살펴보았다.

 소녀가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 안을 보았다. 다행히 동전더미는 그대로 있다. 소녀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예전에 어머니가 이렇게 하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소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해당 데스크로 가서 주머니 안에 있던 동전더미와 통장을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통장에 넣어주세요."

 젊은 여 은행원은 소녀와 동전더미를 한 번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동전더미를 손으로 쓸어담아 세어 보았다. 그리고 소녀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기다려주겠니?"

 소녀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이라는 걸 못알아들은 듯 했다. 그러나, 은행원은 소녀에게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몇 분 후, 은행원은 소녀에게 통장을 주었다.

 "다 됬어. 이제 가 보렴."

 "고맙습니다."

 소녀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은행원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통장을 가지고 은행을 나왔다. 예쁜 옷을 못 가져서 아쉽지만, 나중에 돈 더 모으면 살 수 있으니까. 소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돌아서자마자 소녀의 눈에 아기 옷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 예뻐 보이는 것들이다. 인형 크기가 아기만 하니, 인형에게 입혀도 손색없을 것 같다. 소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금새 아기 옷 진열장으로 뛰어갔다. 물방울 무늬 원피스에다가, 귀여운 고양이 프린트가 찍힌 티셔츠, 무엇보다 소녀의 마음을 홀린 것은 와인 색 치마였다. 저거라면 그 고풍스러운 인형에게 딱 어울리는 옷이리라. 소녀는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았다. 방금 은행에 넣어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소녀는 고민도 해 보지 않고 곧바로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곧, 지폐를 몇 장 든 소녀가 아기 옷 가게로 들어갔다. 소녀는 와인 색 치마를 고르고, 남는 돈으로는 양말을 샀다. 인형에게 양말이 없어 추울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점원이 방실방실 웃고 있는 소녀를 보며 물었다.

 "누구한테 선물 할 거니?"

 "네…동생한테 줄 거에요!"

 왠지 인형에게 준다고 하면 이상할 것 같아,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 버렸다. 소녀는 값을 치르고, 옷이 든 봉투를 들어 기쁜 마음으로 집까지 뛰어갔다. 소녀의 머릿속엔 온통 인형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한테 인사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머니가 만약 옷 봉투를 본다면, 끝까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분명하니까. 소녀는 당장 인형 옷을 벗기고 치마를 입혀 보았다. 잘 어울리긴 하나, 인형 옷이 원래 원피스여서 그런지 윗부분이 휑하니 추잡스러워보였다. 소녀는 고민하다가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치마를 다시 벗기고 원래 옷을 입혔다. 인형의 눈동자는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왠지 눈길은 와인 색 치마에 두고 있는 듯 했다.

 소녀는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인형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어느새 어머니한테 졸랐는지, 같은 반 아이들 여럿이 소녀와 같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각자 인형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서로 자랑하고 있었다.

 "어머, 넌 아직도 그 옷 입히니?"

 한 여자아이가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는 얼떨떨하여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소녀를 조롱하듯이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인형들 중 그 어느 것도, 원래 입고 있었던 옷을 입고 있는 인형은 없었다. 죄다 TV광고에 나왔던 예쁜 옷들만을 입고 있었다. 소녀는 왠지 인형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기 자신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소녀는 이내, 울 것같은 얼굴로 인형을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인형이 왠지 밉게 느껴진다. 소녀는 그 날, 점심시간에 밥을 혼자 먹었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인형을 꺼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예뻐보이던 원피스가 이제는 너무 촌스러워 보인다.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다. 소녀는 그 옷들이 갖고 싶다. 그 예쁜 옷들이 갖고 싶다. 소녀는 거실로 나와 TV를 틀었다. 마침 인형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인형 천 개 판매행사로, 지금 인형을 정식구매하면 예쁜 인형 옷들과 함께, 이전에는 없었던 인형용 옷장을 사은품으로 준다는 광고였다. 소녀는 옷장도 갖고 싶고, 예쁜 옷들도 갖고 싶다.

 "엄마! 나 저거 사 줘!"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소녀의 어머니가 잠깐 고개를 돌려 TV 화면을 보았다. 그러고는, 금새 시선을 요리 쪽으로 돌려버렸다.

 "너 똑같은 거 갖고 있잖아."

 "그거 말구. 인형 옷 예쁜 게 있단 말이야!"

 "기껏 해 봐야 인형인데, 옷은 무슨 옷!"

 소녀는 울상을 지며, 계속 되고 있는 인형광고를 가리키며 계속 외쳤다.

 "저거 사 줘! 저거!"

 "아우, 시끄러워!"

 "저거 사 달라고! 저거!"

 소녀는 거실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며 어머니에게 떼를 썼다. 소녀의 어머니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소녀에게 소리쳤다.

 "당장 방으로 들어가렴! 어서!"

 "저거 사 줘! 제발!"

 "너 왜 그러니? 대체!"

 소녀의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다. 원래는 교편을 잡고 있는 소녀의 아버지 것이지만, 소녀를 혼낼 때만큼은 부부 공용이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를 똑바로 세워놓고 종아리를 때렸다.

 "앙! 아앙!"

 소녀는 매를 맞기 시작하자마자 하늘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한 대 한 대 맞으면서 소녀는 큰 신음을 몇 번씩 내뱉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소녀를 때리기만 했다.

 이내, 때리기를 멈추며 소녀의 어머니가 다시금 명령했다.

 "방으로 들어가렴!"

 소녀는 매를 피하기 위해, 훌쩍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방 문을 닫자마자, 어머니의 매서운 일침이 소녀의 가슴 속에 박혔다.

 "저렇게 고집이 센 건 꼭 지 아빠를 닮아가지고!"

 소녀는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계속 훌쩍였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인형을 바라보았다. 인형의 눈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옷은 그대로 촌스럽다. 소녀는 왠지 인형에게 화가 났다. 소녀는 당장 인형을 들어 방바닥에 내팽겨 치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소녀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인형은 표정이 없었으나 왠지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인형을 다시 창틀에 얹어 놓았다. 그날 밤, 소녀는 저녁을 먹지 않고 잤다.

 인형은 밤새도록 창틀에 놓여 있었다. 창문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와, 안 그래도 차가운 인형의 몸을 더욱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인형은 표정이 없었다. 인형의 눈동자가 살짝 움직인 듯 했다. 소녀를 본 것 같다. 그러나, 다시보니 인형의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인형은 소녀의 고통을 아는지, 인형의 입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간 듯 했다.

 다음 날, 소녀는 인형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인형을 가져가느니, 차라리 안 가져가는 게 낫다는 논리이다. 소녀는 인형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 축에 껴서, 인형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떤 아이들은 인형 옷장을 가지고 와서 여러가지 인형 옷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소녀는 신기한 눈으로 옷장을 만져보려고 했다. 그 때, 옷장의 주인이 황급히 인형 옷장을 치우며 소녀를 노려보았다.

 "넌 인형 있잖아."

 소녀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왕따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였다. 그 누구도, 촌스러운 옷을 입힌 인형을 가져오던 소녀와 함께 다니려고 하지 않았다. 인형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은 인형을 가진 아이들을 졸래졸래 쫓아다니고, 남자아이들은 아예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인형을 가진 아이들은 소녀를 금새 '촌스러운 옷을 입힌 인형을 가져오는 아이'에서 '촌스러운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소녀는 마치 자신이 그 촌스러운 인형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촌스러운 인형을 집어들어 바닥에 몇 번 내팽겨 쳤다. 인형의 눈알이 흔들리며, 어느새 인형의 눈동자가 소녀를 향했다. 소녀는 깜짝 놀라 벽에 인형을 집어던졌다. 인형의 팔이 180도 돌아가더니, 이내 인형의 몸에서 팔이 떨어져나갔다. 소녀는 씩씩 거리며 인형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집 주변에 있는 쓰레기더미를 향해 인형을 던져버렸다. 인형은 다시금 더러워졌다. 인형의 눈은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인형은 며칠 전과는 딴판으로 자신을 대하는 소녀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미 소녀는 떠나간 후였다. 인형은 쓰레기 더미 속에 남겨져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비구름까지 몰려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인형의 옷에 물이 묻으며, 인형 옷에 밴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코를 막으며 인형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인형은 원망스러웠다. 소녀도 원망스럽고, 그 이전 주인도 원망스럽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판 인형 가게 주인도 원망스럽다. 자신을 만들어낸 인형 공장 주인도 원망스럽다. 인형은 세상이 원망스럽다. 사람들 모두가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소유의 광기에 가득 찬 눈. 인형은 그런 인간들의 모습이 싫었다. 인형은 이젠 그 누구의 소유물이 되지 않으려는지, 쓰레기 더미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갔다. 인형의 플라스틱 몸은 썩지도 않고 그대로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아마, 달이 수십 번은 지나갔을 것이다. 인형은 플라스틱 안구를 통해 어두운 쓰레기 더미 속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인형은 자신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들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쓰레기차였다. 인형은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시선을 계속 옮겼다. 인형이 쓰레기차 뒤쪽으로 가로눕게 되자, 열린 뒷문 사이로 소녀의 집이 보였다. 쓰레기 봉지에서 흐른 물이 인형의 눈을 적셨다. 인형의 눈에서 검은 쓰레기 물이 눈물같이 흘러내렸다.

 인형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옮겨졌다. 인형이 쓰레기를 분리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지자, 인부들 중 한 명이 인형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그러더니, 동료 인부를 불렀다.

 "이봐!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봐!"

 "뭔데 그래?"

 동료 인부는 인형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좀 전의 인부가 가리킨 것을 보았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낡은 인형이 있었다. 눈에서 검은 쓰레기 물이 흘러내렸다.

 "으웩! 아무리, 이 일을 몇 년동안 한다지만, 이런 건 정말로 보기 싫단 말이야."

 "이거, 분명 단종된 거 맞지?"

 "그러네. 그, 여자애들한테 반짝 인기 얻었다가 금새 버려진 거. 공장에 재고가 엄청 쌓여서, 결국 공장이 문을 닫았다지 아마?"

 인형은 인부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곧 컨베이어 벨트 끝에 있는 용광로에 눈길이 갔다. 저 붉디 붉은 용광로가 왠지 인간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집단으로 광기를 띤 것 같은 그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결국 버리는 그들. 소유욕의 광기에 휩싸인 그들. 인형은 용광로 안에 들어가자 눈물을 흘렸다. 진짜 눈물인지, 플라스틱 안구가 녹아서 흘러내리는지 모르는 눈물. 그러나, 인형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예쁜 원피스가 불에 타고, 얼굴과 온 몸이 녹아내리면서도, 인형은 그 때 행복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네.....제시어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만, 애초에 집단 광기라는 제시어가 정말 매력적이라서 ㅠㅠ 쓰게 됬습니다. 제가 첫 타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에라 모르겠다~!@#$

인형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1.『아들』님의「인형은 미소를 지었다.」

 

※ 총점 : 33점(입선)

 

(1) 주제 : 11.5점

◎ 심사위원 A : ★★★★

- 돌직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기교를 부리거나 중의적으로 처리하는 것 하나 없이 ‘집단광기’라는 제시어를 ‘유행’으로 좁혀 명료한 상황을 제시하여 잘 풀어냈습니다. 이번 참가작 중 주제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강하게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 심사위원 B : ★★★★

- 집단 광기를 주제어로 선택하고 이것을 소유욕에 입각하여 풀어나간 점이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치기어린 행동을 과연 광기라고까지 비약하여 칭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차라리 후반부에 나오는 공장 이야기에 더 무게를 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 심사위원 C : ★★★☆

- 물건에 대한 애착보단 유행을 따라가는 모습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스토리 진행에 부합하는 주제를 찾아서 소설에다 가져다 댄 느낌입니다.

 

(2) 문체 : 10.5점

◎ 심사위원 A : ★★★

- 오로지 주제를 잘 표현하기 위해 짠 상황을 잇고 연출하기 위한 문장의 나열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크게 어긋나거나 의아한 구석은 없었습니다만 유별나게 아름답거나 생생하게 튀어 오르는 표현 또한 찾지 못하였습니다.

◎ 심사위원 B : ★★★★

- 과장된 묘사나 수식어 없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충실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지나친 수식어도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너무 딱딱한 문장은 이야기를 삭막하게 만듭니다.

◎ 심사위원 C : ★★★☆

- 한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문장이 둘 셋으로 나뉘는 것이 종종 보입니다. 같은 단어를 불필요하게 반복한 문장도 있습니다. 퇴고를 했다면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었을 아쉬움도 남네요.

 

(3) 구성 : 11점

◎ 심사위원 A : ★★★☆

- 도입부는 환상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은 일반적인 시점이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고 집단광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목이 지나서부터 인형에게 생명과 감정이 있는 듯한 묘사가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 심사위원 B : ★★★★☆

- 길가에 버려진 인형을 주은 소녀와 무언가 심상치 않은 모습의 인형. 흔히 괴담에서 사용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만 이 소설에서는 독특하게도 인형이 철저한 약자이자 피해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별다른 반전이 없다는 게 오히려 반전이 되는 경우일까요.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인형에게 주목하게 되지만 실제론 오히려 아이들에게 무게중심이 맞춰져 있어 마지막에 느껴지는 허탈감(?)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다만 결말부분에 있어선 주제에 구성을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들었던 점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심사위원 C : ★★★

- 이야기의 막을 향하기까지의 과정은 평이합니다. 즉흥적으로 손이 가는대로 쓴 느낌에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4) 총평

◎ 심사위원 A

- 마지막 장면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인형을 유행의 은유로 보아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이미지가 비록 비극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매력으로 남았습니다.

◎ 심사위원 B

- 보통 괴담에서나 사용될 것 같은 이야기 구조를 주제에 맞춰 나름대로 변주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얻어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시어인 ‘집단 광기’를 아이들이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한계점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 심사위원 C

-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주요 내용이 끝나고 나오는 막간을 읽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후반부에 인형의 생각이 나타나는 부분은 좀 뜬금없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인형의 관점에서 보였다면 내용이 훨씬 잘 전달되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인데 좀 더 퇴고를 해서 내용을 다듬고 주제를 더 강조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