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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릴레이소설 이벤트 극검의 꼬리를 물어라![완]

릴레이소설 이벤트 극검의 꼬리를 물어라! - 세번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글쓴이 리이

 


-1-

[2012년 12월 21일,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다만 그 날에서야 인류는 알게 되었다.
자신의 종족이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음을.
'그들'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사실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마지막 인류학자의 기록 中







-2-

나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또각또각 8개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오는 여인이 보인다.
거대한 눈 8개 속에 낯선 해골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게 나야?
저게 나구나.
저년 눈동자 속에 비친 저 해골바가지가 나란 말야?
아, 나란 말이구나.

 

 

-3-


 여덟 개의 눈이 문득 사라지고 어둠속에서 한 여인이 그에게로 좀 더 바짝 다가온다. 여인이 자신의 품을 열어 갖가지 마른 벌레들을 그에게 쏟아 내린다. 그는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는 그것들을 끔찍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인을 바라본다. 죽은 벌레와 아름다운 여인. 극적인 대비다. 여인은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격차는 심대해진다.

 여인은 아름답다. 얼핏 창백한듯하면서도 건강하고 생생한 피부의 결과,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칼이 풍성하게 굴곡지며 저 창백한 달빛과 함께 허리까지 흘러내린다. 콧날은 고양이처럼 날렵하면서도 매끈하고, 맨살로 드러난 쇄골부터 이어지는 허리까지의 라인은 그야말로 티브이의 브라운관에서나 줄창 보던 수많은 여신... 아니, 여자 연예인들의 현신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굴곡이 단단한 뼈대와 잘 다져진 근육으로 무리 없이 이뤄지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매 순간 짤막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다만 다리, 그는 그녀의 허리의 끝을 황홀한 듯 바라보다 그 아래 이어지는 여덟 개의 다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리는 아름답다. 까만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다리는 10센티 노란색 스틸레토 힐 위에서 강함과 유약함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다만 그토록 아름다운 다리는 무려 여덟 개였다. 하나의 골반으로부터 매끈하게 뻗은 여덟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광경이야말로 기괴를 넘어선 공포다.

 그는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댄 채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딥레드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로 그에게 말을 했다. 그 입술은 굉장히 크고 도톰하여 하얀 편지봉투 가운데 찍힌 붉은 밀랍 직인처럼, 어딘가 몽롱하고 비어 있는듯한 얼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자는 무릎을 접어 10센치 노란색 스틸레토 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자신이 동굴바닥에 쏟아낸 벌레중 한 움큼을 그러쥐고 그의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저, 저리가.”

 혀가 꼬부라진다.

 -선배, 먹어야 해요.
 “뭘, 이걸? 저..저리가, 마녀... 괴물...”

 무표정에 가까운 여자의 얼굴이 얼핏 슬픈 듯 이그러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섬세한 표정의 변화는 이런 칠흑의 어둠 속에선 볼 수 없다. 여자가 말한다.

 -선배, 먹지 않으면 안되요, 그럼,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어야 해요
 “벌레..? 내가 거지야...? 나, 전도유망한... 레지던트...”

 갑작스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그는 비명을 지른다. 아파, 아파...! 병원! 난, 병원에, 가야 해, 왜냐면, 너무 아파! 나는... 나는...

 -생각하지 마요. 선배는. 아직 합성이 덜 되어,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은, 위험해요.
 “합성...? 합성...?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아아아아아아아악! ... 넌... 넌 누군데? 그럼 넌 누구...!”
 -우선 먹어요, 먹어야 해요.
 “...!!! 누구...!”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 결국 스스로를 소개한다.
 -...저는, ‘아름다운 클리어(Beautiful Clear)’......

 레지던트. 그는 레지던트였다. 여자는 그를 보았다. 여자는 그를 보지 않는다. 여자는 그 어느 곳도 보지 않는다.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여자의 눈을 본다. 여자의 눈동자는 밤하늘보다도 검다. 그리고, 삼백안이다.


   *


 2005년도 7월, 3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먹고 사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아니,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래서 난 공부에 10대를 바쳤다.

 이 문장 한 줄을 쓰는 건 굉장히 쉽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내 온 몸과 정신으로 실현키 위해 정말이지, ‘내 10대를 공부 하나에 바쳤다’.

 “선배는 뭐하고 싶어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요?”
 그 애다. 얜 여자애면서도 나보다도 키가 훌쩍 커 함께 있으면 조금 민망해진다. 나는 그 앨 힐끗 보곤 잠깐 숨이 막혔다. 눈동자가 위로 오른데다 동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색이라, 볼 때마다 기묘하고 강렬한 느낌이 덮쳐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지 뭐.”
 “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데요?”
 “좋은 직장에 가야지.”

 나는 뻔한 대답을 했다.
 
 “왜 좋은 직장에 가고 싶은데요?”
 “먹고 살아야지.”
 “좋은 직장에 안가도 ‘먹고는’ 살 수 있잖아요?”
 “세상 그렇게 만만치 않아, 그냥 준비 할 수 있는 거 할 수 있을 때 다 해둬야하는 거야.”
 “아... 그런가...”

 그 앤 헤헤하고 웃으며 까맣게 웨이브진 검은 머리채를 뒤로 넘겼다. hesitate, 망설이다. heritate, 유산... 나는 문득 한숨을 쉬곤 영단어를 들려주시던 엠피스리의 이어폰을 뺐다.

 “넌 뭐하고 싶은데?”
 “저요?”
 “응.”
 “전 모델이었어요.”
 넌 먹고 살만한가보네.
 “왜, 지금은 아냐?”
 “네.”
 “왜?”
 “이 눈 때문에요.”
 “그런 눈이면 모델 하면 안된데?”
 “아뇨, 전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연기자는 단순히 강렬하고 특이한 인상만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아주 작은 눈동자의 떨림과 섬세한 손짓만으로도 미세한 것들을 잘 잡아 명확하게 표현해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눈은.”
 그 앤 속상한 듯 눈을 아래로 두었다. 나는 그런 그 애의 얼굴을 무심코 찬찬히 뜯어보았다.

 "너 이름이 뭐야?"
 그 애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공백을 두다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한자가 뭐야?"
 "아름다울 '-', 맑을 '-'예요."

 문득 이런 눈을 가진 여자애가 사진을 찍으면 어떤 것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내가 지금 당장 궁금해야할 것은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알 수 없었던 영단어이고, 이틀째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임에도. 나는 흘끗 시선을 내 신발코에 두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의 다리에. '-'의 다리는 불투명한 검정색 스타킹으로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검정색 스타킹은 ‘-’와 헤어지고 나서 월셋방에 들어가 단촐한 내 책상 위에 앉아 문제지를 필 때까지도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얼굴의 개기름이나 잡아 죽이고 죽여도 내 방을 떠나지 않는 바퀴벌레처럼 내 뇌와 눈가 사이 어딘가에서 들러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렇다. 내 공부를 방해하는 '-'의 다리는 마치 지긋지긋한 화농성여드름이나 지난번보다 떨어진 점수가 새겨질 앞으로의 성적표와 같은 것인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길고 가느다란 ‘-’의 다리는 불투명한 검정색 스타킹으로 감싸여 있었다.

   *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쭈그려 앉은 여자는 검정색 스타킹을 신은 여덟개의 다리를 불안한 듯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는 온 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끓어오르는듯한 신음소리를 간신히나마 뱉어냈다. 그가 의식치 못한 사이에 여자가 가져온 벌레는 반으로 줄었다. 그는 자신의 입가에 뭍은 온갖 벌레의 잔해와 진액이 뭍은 것을 그녀의 거대한 눈동자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목구멍에 이물감이 들어가는 느낌이 생생하다. 내가 지금 이런 것들을 먹은 거야? 여자는 ‘하나만, 하나만 더...’라고 말하며 한 손으론 그의 얼굴을 잡아 벽에 밀어붙여 고정하고 다른 손으론 벌레를 집어들어 그의 입에 쑤셔넣는다. 그는 소리소리를 지르며 여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여자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빼고 뒤로 몇걸음 물러난다. 여덟개의 하이힐 또각거리는 소리가 동굴바닥에 울린다. 따그다다따그닥딱딱... 그는 고개를 흔들며 여자에게 소리소리를 지른다.

 “내가, 왜, 대체 왜, 벌레를 먹어...!”
 -먹어야, 편해질 수 있어요. 어서 합성을 마쳐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왜...!”
 -시간이 없어요. 당신이 ‘먹이’가 아닌 그들... 아니, 우리의 ‘동족’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해요.
 “무슨... 소리...”
 -어서 제대로 된 영양분을 섭취해, 선배, 저처럼 되어야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철지난 성장통이 다시금 되돌아온 듯 온 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알코올 원액을 그대로 들이 마신 듯이 가슴과 더불어 내장쪽이 타들어갈 듯이 아프고 뜨겁다. 그 때였다. 바람소리.

 아니, 바람소리가 아니다. ‘쉬-쉬--’... 어떤 규칙성을 가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저 소리는...

 여자는 갑작스레 입을 닫고 몸으로 어떤 소리를 내보냈다.

 그 '말'은- 어떤 간절함을 담고 있다는 것을 그 또한 알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을 하자면, ‘이젠’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저 무의식의 바다 수면 아래서부터 물살을 가르고 온 활어 하나가 그 위로 튀어오르듯 어떤 단서 하나가 떠오른다.


 바람소리를 닮은 저 소리는- 외계의 언어다.